계약당사자 확정에 관한 법리와 판례
계약에서 의사표시의 ‘행위자’와 ‘명의자’ 혹은 그로 인한 법률효과에 관한 ‘실질적 이해관계자(이해귀속자)’가 다를 경우, 누구를 당사자라고 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법률행위 해석의 문제이다 계약이란 쌍방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므로 상대방을 고려한 공통의 의사를 무시한 채 어느 일방 내부의 사정만으로 계약의 성립 여부 내지 당사자의 확정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 확정론
타인의 명의를 빌려서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먼저 법률행위의 당사자를 결정하고, 만약 명의인의 법률행위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대리에 관한 규정이 적용 또는 유추적용되는지를 검토하여 행위의 효력을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설명하는 이론구성이다.
누가 당사자로 되는가는 앞서 본 대로 법률행위의 해석에 의하여 결정된다. 즉, ① 행위자와 명의인 중 누구를 당사자로 하는지에 대하여 행위자와 상대방의 의사가 일치한 경우에는, 그 일치하는 의사대로 행위자의 행위 또는 명의인의 행위로 확정한다. ② 만일 그러한 일치하는 의사가 확정될 수 없는 경우에는, 규범적 해석을 하여 구체적인 경우의 제반사정 위에서 합리적인 인간으로서 상대방이 행위자의 표시를 어떻게 이해했어야 하는가에 의하여 당사자가 결정되어야 한다. 행위자의 내적 의사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는 단지 대리행위의 취소가능성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당사자가 확정되면, 그 당사자의 법률행위로서 효력 발생 여부를 가린다. 즉, ① 행위자 자신의 법률행위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행위자의 법률행위로서 효력이 발생한다. 명의인 표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대리행위에도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명의인은 추인에 의하여 법률효과를 자기에게 귀속시킬 수도 없다. 반면에 ② 명의인의 행위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실제행위자 이외의 자에게 법률효과를 귀속하게 되어, 대리규정의 적용 또는 유추적용에 의하여 법률행위의 효력을 가린다. 원칙적으로 명의인이 본인으로서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할 것이다(대리인이 직접 본인 명의로 한 대행적 대리). 대리인은 대리관계를 표시(현명)하지 않더라도 직접 본인의 명의로도 할 수 있다(대법원 1963. 5. 9. 선고 63다67 판결, 대법원 1987. 6. 23. 선고 86다카1411 판결).
허수아비 이론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서 사실적 또는 법적 이유로 직접 행위를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자(배후조종자)에 의하여 다른 자가 표면에 내세워지고, 그 자(허수아비)가 자신의 이름으로 행위를 하지만 배후에 있는 실질적인 행위주체의 계산과 이익으로 하는 경우이다.허수아비 행위는 원칙적으로는 유효하고(가장행위가 아님), 내세워진 당사자인 허수아비 자신이 그 법률행위에 의하여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하며(다만 그는 취득한 객체를 배후조종자에게 양도할 의무를 질뿐임), 그 상대방이 이러한 허수아비 행위임을 인식하였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적으로 허수아비가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행위의 법률효과가 처음부터 허수아비에게 발생하지 않고 직접 배후조정자에게 발생한다고 합의한 경우에는 가장행위가 된다고 한다(그 경우에는 허수아비는 행위당사자가 아니고 배후조종자의 직접대리인이 된다).
임대차계약에 있어서의 당사자결정에 관한 판례를 보면, 종래 판례는 명의보다 실질을 중시한 것이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대법원 1981. 5. 26. 선고 80다2367 전원합의체 판결
원고가 건물을 매수하면서 그 처에게 명의신탁하여 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고, 이를 피고에게 임대함에 있어, 편의상 임대차계약서에 임대인을 등기명의와 같이 그 처 명의로 기재하였을 뿐인 경우에는 위 계약상 임대인은 원고라고 한 사례.
대법원 1983. 11. 22. 선고 82다카1696 판결
임대차계약서상 임차인이 병 명의로 작성되어 있더라도, 원심이 증거에 의해서 소외 갑이 피고(임대인)와 간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소외 을신용금고로부터 융자받은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을신용금고의 직원 병 명의로 신탁하여 위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을 인정하고 피고에 대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이 실질적으로 소외 갑에게 있다고 한 판단은 위 계약서 내용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므로 처분문서에 관한 법리 오해의 위법이 없다고 한 사례. 임차인 명의신탁에 따른 계약서 기재와 관계없이, 실질임차인(갑)을 당사자(임차인)로 보아 그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압류·전부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정당하다고 하였다.
대법원 1993. 4. 27. 선고 92다55497 판결
갑이 을 명의로 건물을 임차하여 을로 하여금 식당을 경영하게 하던 중, 을이 갑에 대하여 실질적인 임차인은 갑이며 자신은 명의상의 임차인임을 인정하고 임차인으로서의 권리 일체를 갑에게 환원하기로 한 약정은 갑, 을 사이의 내부관계에 지나지 않고 임대인에 대한 통지 또는 임대인의 승낙이 없는 한 임대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한 사례. 실질임차인(갑)에 대한 채권자가 실질임차인이 가지는 임차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하여 전부명령을 받았으나, 그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가지는 자(계약당사자)는 명의상 임차인(을)이므로, 위 전부명령은 무효라는 취지이다.
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3다44059 판결
일방 당사자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있어서 계약상대방이 대리인을 통하여 본인과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려는 데 의사가 일치하였다면 대리인의 대리권 존부 문제와는 무관하게 상대방과 본인이 그 계약의 당사자이다. 아들 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는 부동산에 관하여 아버지가 대리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고(포괄적 대리권 인정), 상대방도 등기부상 명의자(아들)와 계약하려는 의사였음이 인정되므로, 명의자 본인인 아들이 당사자라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이 판례는 타인의 명의를 이용한 계약에서 당사자를 누구로 보고 그 행위의 효력은 어떻게 되는가에 관하여 계약 유형이나 사안별로 다른 결과를 보이는데, 이는 계약의 특성에 따라 구체적 사안에서 당사자를 누구로 보아야 하는가에 관하여 의사(법률행위) 해석을 달리함에 따른 결과로 생각된다. 또한, 그 당사자를 결정하는 법리에 관하여도, 위에서 본 당사자 확정론과 계약명의신탁 이론의 접근방식으로 나뉘어져 약간의 혼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의 기본 입장은, 예외적으로 명의차용관계(명의와 실질의 괴리)에 관하여 계약상대방과 양해가 되어 실질적 당사자에게 직접 법률효과를 귀속시키기로 하는 합의가 있다는 등의 사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는 명의자를 계약당사자로 보는 입장이다. 특히, 계약상의 명의자와 행위자가 일치하면서 다만 실질적 경제적 효과귀속자가 배후에 있는 데 불과한 경우에는, 적어도 법률적 효과귀속자는 명의자이고 그것이 당사자의 의사와도 일치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므로 명의자를 당사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비진의표시나 통정허위표시 조차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대법원 1998. 9. 4. 선고 98다17909 판결
통정허위표시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의사표시의 진의와 표시가 일치하지 아니하고, 그 불일치에 관하여 상대방과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하는바, 제3자가 은행을 직접 방문하여 금전소비대차약정서에 주채무자로서 서명·날인하였다면 제3자는 자신이 당해 소비대차계약의 주채무자임을 은행에 대하여 표시한 셈이고, 제3자가 은행이 정한 동일인에 대한 여신한도 제한을 회피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제3자 명의로 대출을 받아 이를 사용하도록 할 의도가 있었다거나 그 원리금을 타인의 부담으로 상환하기로 하였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소비대차계약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타인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에 불과할 뿐, 그 법률상의 효과까지도 타인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로 볼 수는 없으므로 제3자의 진의와 표시에 불일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